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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여행/전시

한국근대미술걸작전

기루짱 2009. 4. 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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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별러서 간 전시. 전시 광고가 났을 때부터 마음먹고 있었지만 결국 마지막날, 마지막 타임에 갔다.
좀더 일찍 갔더라면 두세 번은 더 갔을 텐데...
한국근대미술걸작전의 완전 폐막과 동시에 미술관을 나왔다.
덕분에 최고의 도슨트를 듣긴 했지만, 도록 한권 구하지 못했다.ㅠㅠ

전시 관람 후기.

중인, 양인으로 취급받던 조선말 화가들이 근대화 된 시점의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것.
1900년대초, 양반가 출신 혹은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동경에 미술 유학을 떠난다.
당시 동경에는 파리 유학을 다녀온 당대 유학파 교수들이 포진해 있었다. 당시 파리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인상주의, 야수파 등 근대 미술이 자리잡고 있던 시점.
이들 유학파 교수들의 밑에서 배우면서 당대 최고의 화풍이 그대로 익히게 된다.

제일 먼저 유학을 다녀온 고희동의 작품은 빛의 흐름을 잡아낸 인상주의 기법의 초상화였다.
처음 봤을 땐, 우리나라에도 이런 유럽의 화풍을 이어받는 작가들이 있었나 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자세와 구도다.
아마 지도 교수의 영향으로 본인도 모르게 인상주의 화법을 배우지 않았을까.
프랑스에서 유학을 다녀온 일본 교수 밑에서 배워 인상주의 화법이 드러나지만, 그러나 인상주의와는 사뭇 다르다. (이는 야수파나, 입체주의나 모두 마찬가지였다.)

아래 그림은 이번 전시의 포스터로 쓰였던 이쾌대의 <자상화를 입은 초상>.
이쾌대의 아버지는 창원 군수를 지냈고, 할아버지 이선행은 종오품에 이르는 금부도사를 지냈다. 대대로 벼슬을 한 경주 이씨 집안의 후손으로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당대 최고의 엘리트가 휘문고 시절 그림을 배우게 되어 동경 유학을 다녀와 화가가 된 것.
<자화상을 입은 초상>은 "두루마기에 중절모"만 보아도 "한국의 근대"가 느껴진다.
자세히 보면, 채색화이지만 배경은 동양화 배경이고, 들고 있는 것은 동양화 붓이다. 
이런 화가를 왜 몰랐을까, 궁금했는데 한국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나면서 북한을 택해 북으로간 작가다. 참고로, 이번 전시에 월북작가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이쾌대.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이것이 곧 작가의 내면 아니었을까.


구본웅. 1935. 친구인 작가 이상을 그린 것이다. 야수파의 느낌이 물씬.


역시 구본웅의 작품.


고희동.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였지만 결국 말년엔 전통회화로 넘어온다.


이마동. 휘문고 시절 고희동으로 부터 그림을 배운다.



그리고 개인소장 작품들의 출품작들이 많았던 것.
삼성가에서 개인 소장한 병풍, 박수근의 아이를업은 소녀, 이쾌대 작가의 유족 소장 그림, 연서... 앞으로 또 볼 수 있을까.
작품은 직접 보지 않으면 절대 그 느낌을 알 수 없다.
사진의 크기, 색깔은 인쇄물로선 절대 알 수 없다.
특히 병풍은 지그재그로 서 있을 때 그 참맛을 알 수 있다고!

박수근. 아기 업은 소녀. 개인소장.


백남순. 낙원. 1937. 개인소장. 이렇게 보는 것과 실제 병풍은 "매우매우" 다르다!



마지막으로, 앞서도 말한 월북 작가들의 그림.
이쾌대, 이여성 등 너무 몰랐던 작가들을 알 수 있었다. (이쾌대는 이여성의 동생이다. 이 식구들 이름 참...^^)
월북을 해서 생소한 작가의 그림과 국내에 유명한 작가의 그림과 일색 작가의 그림이,
또 공산주의 작가와 안티코뮨작가의 그림이 한 데 걸려 있었다!

박수근. 할아버지와 손자. 1960. 국전과는 참으로 연이 없었던 박수근이 13회 국전에 추천되어 출품한 작품.


박래현. 노점. 1956. 박수근이 운을 떠나 외면까지 당했다면, 당시 심사위원들의 눈을 확 끌었던 작품. 국전 특선을 받았다. 큐비즘이 눈에 확 들어왔을 것 같다. 남편은 김기창 화백. 이 그림과 앞의 그림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걸려 있었다. 물론 그때와 현재의 인기작가는 달랐지만.



마지막으로 천경자의 발견.
천경자 특별전을 다녀온 적이 있다. 서른다섯마리의 뱀그림 <생태>, 회색 얼굴 자화상, 세계 여행 시리즈를 보면서 드닥 호감이 가지는 않았다. 어둡고 탁한 데다 징그럽기까지 한 전시작품들을 보면서 왜 저렇게 힘든 사랑을 하고 힘들게만 표현했을까 하는.
그러나 이번 전시에 나온 두 작품을 보고 사랑이 깊으면 증오도 깊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해졌다.
초장기 작품이라 그런지, 개인 소장작품이라 그런지, 이번 전시에 나온 그림은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보는 순간 정말 찡해졌다.
<목화밭에서> 화목한 가정의 모습과 퇴근길에 <굴비를 든 남자>가 돌아오는 모습은 얼마나 사랑과 가정의 화목을 바랬는지 애틋하기 마저 했다.

천경자. 목화밭에서. 1954.


천경자, 굴비를 든 남자.


부디 이런 전시가 많았음 좋겠다.

 

이인성. 빨간옷을 입은 소녀. 동시대를 산 사람들의 삶이 곧 그 시대의 역사겠지만, 이인성 작가의 죽음은 비운의 근대사를 대표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억해야 할 천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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