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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이 / 정세랑 / 창비

기루짱 2023. 6. 6.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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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루 2021/02/18 01:15 

이만큼 가까이 / 정세랑 / 창비

1. 저자 정세랑

보건교사 안은영은 넷플릭스로 보았고 책은 언제 기회가 되면 읽지 뭐 하고 있다가 유퀴즈에 나온 정세랑을 보고 끌렸다. 
도서관에 있는 정세랑 책을 몽땅 가져왔는데 아뿔사 소설집. 난 소설집은 잘 안 보는 편이라. 장편은 이거 하나 밖에 없었다.
사실 김지영도, 쇼코도, 최근 몇년 끌리는 작가들이 없었는데 이 작가 끌린다. 읽고나서 더 끌린다. 장르적이면서도 장르적이지 않다랄까. 좋다고.

2. 책속에서

고등학생이고 아직 뭐 대단한 미래를 약속할 만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여자애들  마음속엔 어떤 경보장치 같은 것이 있다. 이를테면 명절마다 제수음식을 하는 친척 어른들의 얼굴에 떠오른 불행의 반점 같은 것에 반응하는 경보장치 말이다. (중략) 
그렇구나, 자칫 잘못하면 인생이런 거 아주 쉽게 비루해지는구나. 아니 웬만해서는 비루함을 피할 수 없구나.
여자애들은 그렇게 두려워하며 자란다. 아주 작은 신호에도 과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달아나는 먹이사슬 하위의 동물들처럼 말이다. 
-94쪽

두 사람은 했다.
함께 잠들지 않았으므로 잔 것이 아니고, 서로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사랑을 나눈 것이 아니다. 그냥 했다.
-111쪽

그러니까 나는 송이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서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결국 태어나서 맨 처음 두각을 나타내는 일이 당시에는 아주 사소해 보이더라도 정말로 잘하는 일일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세계화란 친구들이 지구 여기저기로 흩어져버리는 것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144쪽

우리는 그렇게 모여서 함께 망가지고 고장나고 그러다 한 사람씩 사라질 것을 예감했으나 이른 포기의 달콤함 같은 것이 깃들어 있어서 그리 무거워지진 않았다. 열개의 인디언 인형처럼 하나씩, 운이 좋으면 길게 머물 거고 아니라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었다. 순서를 기다리면서 담담하게 치킨을 먹고 생일 파티를 하고 경조사를 챙겼다. 살아진다는 어른의 말에 진저리를 내면서도 살아졌다.
-192쪽

서로의 결점에 대해 너그러워졌다. 민웅이의 무기력에 대해, 인겸이의 엘리뜨주의에 대해, 주연이의 쓰디쓴 부분에 대해, 송이의 방랑벽에 대해... 아마 친구들도 나의 어떤 부분을 참아주고 있었을 것이다. 일단 애도장애라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그 시기를 참아준 것만 해도 고맙다. 변화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변화를 요구하지도 직언을 하지도 않았다. 서로의 얕은 수와 비굴한 계산까지도 웃음으로 넘겼다. 못나면 못난 대로 살아 있어달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껏 멀어졌다가 다시 가깝게 되고 나서, 우리는 늘 서로의 안위를 걱정했다. 
-193쪽

경계에서, 문학 바깥에서 문학을 해왔다는 것이 그동안 저의 한계이자 긍지였습니다. 긍지에 가까울 때가 더 많았습니다. 공그르기를 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공그르기는 아주 간단하고 자주 쓰이는 바느질법입니다. (중략) 농담과 비명을, 견고하지만 추악한 것과 한시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모두의 상처와 한사람의 회복을, 도발과 포옹을, 찬란한 단어들과 그 그림자들을, 차가운 세계와 차갑지 않은 우정을, 티없이 순정한 것과 건강하게 잡스러운 것을- 온갖 것을 이어보고 싶습니다. 이어진 솔기가 잔디처럼 부드러운 곳을 걷고 싶습니다. 그렇게 번져나가고 확산하는 지점에 서 있고 싶습니다.
(중략) 저와 제 동료들이 하는 작업들이 결국 그렇게 거대한 것과 등을 대고 서서 이질적으로 눈길을 사로잡고, 갈증을 해소해주고, 밤에는 작고 하얀 창으로 빛나며, 기포와 향미를 더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안쪽 어두운 선반에 누운 서늘한 캔처럼 차례를 기다려 왔던 것 같습니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미끄러질 저를 받아주세요.
-271쪽 수상소감 중

3. 한줄평

왜 지금 책속 문장들을 쓰면서 울컥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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