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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딸이 이기적으로 살기 바란다 / 정연희 지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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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딸이 이기적으로 살기 바란다 / 정연희 지음

기루짱 2023. 6. 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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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루 2021/12/02 10:34 

 


나는 내 딸이 이기적으로 살기 바란다 / 정연희 지음 / 허밍버드

1. 정연희 
50대. 교수. 딸 아들 하나씩. 디자이너. 캐드. 이탈리아로 패턴유학. 전자학 박사?
책 속에서 나오는 이력만으로도 정해진 길이 아닌 특이한 개척로다.
이 책은 딸 결혼을 앞두고 하고 싶은 말을 쓰기 시작해서 묶은 글.
결국 세상의 모든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2. 목차

1장 딸아, 처음부터 너는 너였단다
2장 엄마의 세상이 너의 그늘이 되지 않기를
3장 나는 엄마의 희생을 먹으며 자랐다
4장 너를 힘껏 사랑하는, 눈부신 삶을 살기를

1장 딸의 이야기 보다 2장, 3장 자신과 엄마의 이야기가 더 가슴 절절했다. 개인의 이야기지만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3. 책속에서

딸을 낳고 친정에서 한 달 산후조리를 받았다. 엄마는 모유 수유를 하는 나를 위해 정성을 다해줬다. 수술 후라 잘 못 움직이던 나를 위해 작은 소반에 정성껏 식사를 챙겨주셨다. 딸이 입을 오물거리며 젖을 찾아 “젖 먹이고 밥 먹을까, 엄마?” 했을 때, 엄마는 딱 잘라 말했다.
“엄마 배가 불러야 젖도 잘 나오는 거야. 먼저 먹어라. 10분 만에 애 어떻게 되지 않아. 걱정 말고 찬찬히 먹어. 애는 내가 안고 달래줄게.”
할머니의 단호하고 힘 있는 말에 딸은 할머니의 품에 안겨 입맛만 다실 뿐 떼를 쓰지 않았다.
산후조리를 마치고 시댁에 가니 시부모님은 손녀를 안고 딸의 배냇짓에 웃음이 가득했다. 딸을 낳고 한 달 만에 찾아뵙고 저녁 식사를 준비해 밥을 먹으려 하니 젖 먹을 때가 된 딸이 징징거렸다. 나는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막 국을 먹으려 할 때 시어머니가 한마디 하셨다.
“애 젖먹이고 먹으렴. 애 배고파 죽겠다.”
나는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69쪽

나는 늘 바지런하고 성실하던 엄마의 엄연한 경제활동이 가족들에게 시답지 않게 여겨지는 게 싫었었다. 구접스러운 일을 하는 거라며 면박을 주던 아버지와 사아게감을 발로 차던 오빠 모습이 싫었고, 그런 소리에도 미소 짓는 엄마가 슬픔으로 다가왔었다. 성실한 노동이 "몇 푼 받느냐고 그러냐"는 한마디로 응축되는 게 노여웠다. 
-132쪽

낮과 밤은 계절에 따라 그저 우리에게로 올 뿐인데 어른들은 여자라는, 딸이라는 이유로 밤을 두려움의 시간으로, 어둠을 경계해야 하는 시간으로 가르치고 규정시켰다. 언뜻 생각하면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하겠지만, 밤의 아름다움을 진정 볼 수 없다면, 밤에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없다면, 밤에 다녀야 할 길을 나서지 않는다면 여자이자 딸인 우리는 하루의 반을 스스로 집 안으로 한정시킬 수밖에 없다. 
-153쪽

"네 엄마가 평생 그놈의 하느님께 바친 돈이 집 두 채는 족히 될 거다. (...)하느님을 믿으면 돈이 나오냐, 뭐가 나오냐? 내가 평생 벌어다 준 돈을 네 엄마가 그리 허망하게 쓰고, 맨날 성단 간다 쪼르륵 나가고. 아니 평생 죽도록 돈 벌어 먹여줬으면 나를 챙겨야지, 뭔 성당 청소며 레지오며..."
(...)
"아버지 생각해봐요. (중략) 제가 일이 있어 나가야 된다고 하는데, 남편이란 사람이 내 밥 차려야 하니 못 나간다 하면 옳다구나 하고 제가 그러고 살아야 돼요? 그런 소릴 듣고 제가 살고 있다면 아버지 마음이 좋겠어요? 평생 순종한 엄마도 남의 집 귀한 딸이었어요. 그렇게 아빠 편한 대로 하시면 안 되죠. 그러지 마세요. 엄마가 아버지를 너무 사랑하니까 이제까지 참고 산 거예요."
-185쪽

부모는 자식이 모르는 선물을 한가득 주고 떠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선물 꾸러미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건 나만 알고 있고, 나만 꺼내 볼 수 있는 것이어서 부모는 선물을 줘놓고도 그 선물이 어찌 열릴지 바라보는 존재가 아닌가 한다. 살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일들과 소소한 불화들이 우리 인생에 모래알처럼 깔려도 결국 선물 꾸러미를 열어 키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존재는 나 이외에는 없음을 아버지는 마지막 가시는 길에 내게 알려줬다. 
-195쪽

평생을 함께하는 부부라 해도 부부의 삶이 한 개인의 행복에 우선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부부의 세계는 어렵다. 부부의 세계란 '사랑으로 포장된 수많은 욕망이 뒤엉킨 연꽃밭 같은 세계'가 아닌가? (...) 욕망이 여과 없이 노출되는 부부의 세계에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상대의 욕망을 그대로 직시하고 그만큼 내 욕망 또한 그대로 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욕망은 생각만큼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어떤 욕망이든 욕망이 강한 자는 욕망이 약한 자를 소비하게 되니 말이다.
-218쪽

건강한 조직은 생물처럼 조직 내 구성원의 역할 분담으로 살아남는다. 가정은 말할 것도 없다. 의지만 있다면, 자식 돌보는 일은 나의 일로 받아들여진다. 직장에서처럼 네 일 내일 따질 것도 없는, 우리 가정의 소중한 자식인데 어찌 아빠가 아이를 키울 수 없겠는가? 나이가 어리든 많든, 남자든 여자든 내가 키워야 할 자식이라 받아들이면 잠이 부족해도,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려도, 시간에 쫓기듯 살아도 아이를 키울 수 있다. 엄마여서 키우고 여자라서 키우는 게 아니다. 
-225쪽

살면서 말에 행동으로 답해야 할 때가 있다. 말의 무게를 행동으로 지는 사람만이 진실하다. 수많은 사랑의 언어가 바람같이 시간에 날리는 이유는 그저 말뿐이기 때문이다. 
-233쪽



4. 소감

처음 시가에 인사를 갔던 날이었다. 반갑게 맞아주셨지만, 기억나는 시아버지의 요지는 " 너희들끼리 잘 살아라. 우리는 해줄 것이 하나도 없다. 열심히 벌어서 살아라."였다. 틀린 말이 아닌데 왜 이렇게 속상하지, 기분이 엄청 다운되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그 실체가 명확해지는 순간, 알게 되는 것은 내 감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시가에서는 아들이 데려온 결혼할 여자가 돈 잘버는 아들에게 평생 얹혀살 것을 제일 먼저 고민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보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 큰 돈 버는 일은 아니라고 여겼던지 결국은 이 말을 하고 마쳤다. 
살면서 이걸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일을 시작할 때마다 얼마를 버는지 물었고, 가르치는 일을 할 때는 학생수는 좀 늘었는지 몇명인지 매번 물었다. 그러면서 신랑은 늘 바쁘고 피곤한 아이였다. 
신혼부부를 지원하고 응원하고 잘 살아봐라가 아니라 너희가 벌어서 살아라에 실망은 되었지만 그때는 이 기분의 실체를 몰랐다. 내가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쁜지 알지 못하고 짜증만 났던 걸로 기억한다. 
신랑 역시 무슨 말인지 몰랐을 것이고. 아니 내가 그때 이런 기분을 밝혔더라면 신랑은 자신의 부모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반박했을 것이고 그렇게 받아들이지 말아라,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 라고 받아쳤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도 이렇게 싸우고 있고 타협하지 못한 채 덮어두고 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결혼하고 들은, 위에 나온 말들 이외의 무수한 말들의 실체들을 읽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었으나 문자로 설명된 것을 보는 것은 통쾌함을 주기도 했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내 말을 끌어내 줬으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도 싫었고, 누군가에겐 옛날의 갈등이 내겐 현재의 갈등인 것도 싫었다. 
책을 읽는 동안 딸이 계속 나에게 '엄마는 내가 이기적으로 살면 좋겠어?'라고 여러 번 물었다. 처음에는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더니 그건 나쁜 거 아니야? 자기만 생각하는 거잖아. 라고 하더니 곧이어 나를 좀 생각하는 건 좋겠네 했다. 다음날 또 내가 이기적으로 살면 좋겠어?라고 자꾸 물어봐서 이기적으로 사는 게 뭔데? 나만 생각하는 거! 하길래 그 이야기를 이렇게 한권으로 적어놓았겠니? 너가 궁금하면 읽어봐라고 했다. 입을 삐죽이며 안 봐라고 했는데 사실 난 아이가 이 책을 끝까지 꼭 언젠가 한번 읽으면 좋겠다.
갈등은 저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고 나아가 갈등 없는 사회란 없으며 아이에게도 갈등은 현재진행, 아니 미래진행형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 갈등을 해결하는 길에 힘이 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고, 가까운 사람이 갈등의 장본인이 되기도 한다. 그 갈등을 해결하려면 본인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 고집을 작가는 갈등의 당사자였던 아버지에게서 오히려 이어받았다고 적음으로써 대화해를 이룬다고나 할까. 하지만 갈등속에서 사는 모든 딸들이, 그런 갈등을 유발시키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기를 요구한다. 
나는 초저출산 시대에 가장 적합한 해결은 집이나 경제력, 사교육 등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자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고릿적을 넘지 못하는 한, 집안 가사 곳곳에 있는 이런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은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좀더 이기적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포기하지 말고, 고래숨으로 참고, 그렇다고 너무 참지 말고, 단단하게 좀더 이기적으로 살아야겠다고. 결국 힘에 부친 내 문제였으니. 욕망에 진 결과였으니. 더 욕망하라! 를 이렇게 한권으로 적어놓았겠니? 너가 궁금하면 읽어봐라고 했다. 입을 삐죽이며 안 봐라고 했는데 사실 난 아이가 이 책을 끝까지 꼭 언젠가 한번 읽으면 좋겠다.
갈등은 저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고 나아가 갈등 없는 사회란 없으며 아이에게도 갈등은 현재진행, 아니 미래진행형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 갈등을 해결하는 길에 힘이 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고, 가까운 사람이 갈등의 장본인이 되기도 한다. 그 갈등을 해결하려면 본인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 고집을 작가는 갈등의 당사자였던 아버지에게서 오히려 이어받았다고 적음으로써 대화해를 이룬다고나 할까. 하지만 갈등속에서 사는 모든 딸들이, 그런 갈등을 유발시키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기를 요구한다. 
나는 초저출산 시대에 가장 적합한 해결은 집이나 경제력, 사교육 등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자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고릿적을 넘지 못하는 한, 집안 가사 곳곳에 있는 이런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은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좀더 이기적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포기하지 말고, 고래숨으로 참고, 그렇다고 너무 참지 말고, 단단하게 좀더 이기적으로 살아야겠다고. 결국 힘에 부친 내 문제였으니. 욕망에 진 결과였으니. 더 욕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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