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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2 / 이민진 지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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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2 / 이민진 지음

기루짱 2023. 6. 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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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루 2022/12/18 23:34 
파친코 1, 2 / 이민진 지음 / 인플루엔셜 펴냄
 
1. 저자 이민진
 
1968년 생. 한국계 미국인. 7살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로스쿨에 진학, 변호사로 2년 근무하다가 글쓰기 시작. 
남편의 일본 근무지 발령으로 일본으로 와서 많은 자료를 수집했다고. 
1996년 이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고 거의 30년동안 품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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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많은 자료를 읽어낼 수 있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힘이 소설에서 퐉 느껴진다. 
 
 
2. 목차
 
1부 고향 1910-1933
2부 모국 1939-1962
3부 파친코 1962-1989
 
 
3. 책 속에서
 
1933년 오사카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에서 굶고 계셔요. 삼촌은 숙모랑 아이 들을 먹여 살리지도 못하시고요. 상황이 이러니 할 수만 있다면 제 손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에요. 하나님은 제가 부모님을 공경 하기를 바라세요. 부모님을 돌보지 않는 건 죄예요. 제가 수치스 러운 일을 당한다 해도......” 누나가 울기 시작했다. "주님이 저희 기도의 응답으로 요시카와 상을 보내주신 게 아닐까요?" 누나가 유 목사를 바라보았다. 유 목사는 누나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듯 고개를 숙였다.
이런 식의 합리화를 듣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 악행을 선 행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그러는 것이었다. 하 나님은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으신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 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님은 젊은 여자가 계명을 따르려고 몸을 파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결과가 좋다고 해서 죄가 씻어지 지는 않는 법이었다.
 
유 목사가 이삭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일을 많이 봤다.
이런 남자들이 워낙 나긋나긋하게 구니 여자애들은 자기가 주도 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 실상은 자기가 저지른 실수로 결국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건 여자애들인데도. 주님께서는 용서하시 지만, 세상은 용서하지 않는다네"
 
1949년 오사카
"전혀 없어. 그런 이야기는 안 한다고, 난 사업가야. 난 너도 사업가가되면 좋겠어. 그리고 네가 그런 모임에 갈 때마다 남한테 휘둘리지 않고 네 머리로 생각하고, 반드시 네 이익을 챙기면 좋 겠어. 일본인이든 조선인이든, 단체 생각에만 빠져 깝죽대는 놈들은 끝장나게 돼 있어. 진실은 자애로운 지도자 따위는 없다는 거야. 네가 날 위해서 일하니까 난 널 보호하지. 네가 바보처럼 굴면서 나한테 득이 되지 않는 것을 하면, 난 널 보호하지 않아. 그런 조선인 단체들 이야기를 하자면, 거기 지도자들도 그저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해. 돼지와 다를 바 없이 멍청한 인간들이야. 그리고 우리는 돼지를 먹지. 넌 전시에 굶주리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터무니없는 값을 받고 고구마를 파는 농장주 다마구치와 살았잖아. 그 사람은 전시 규정을 어겼고 난 그 사람을 도왔어. 그 사람은 돈을 벌고 싶어 했고 나도 마찬가지니까. 그 사람은 자기가 예의 바르고 착실한 일본인이라거나 자랑스러운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하겠지. 다 그렇지 않아? 그 사람은 형편없는 일본인이지만 영리한 사업가야. 난 좋은 조선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야. 난 돈을 아주 잘 벌어. 모두가 사무라이 어쩌고 하는 헛소리나 믿는다면 이 나라는 결딴날 거야. 천황도 다른 사람 따위 신경이나 쓸 것 같아? 그러니까 난 너한테 그런 모임에 가지 말라 거나 단체에 가입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이건 알아둬. 그 공산주의자들은 너 따위엔 신경 안 써. 그들은 아무한테도 신경 쓰지 않아. 그들이 조선을 신경 쓴다고 생각한다면 넌 미친 거야."
"이따금 제 고향이 그립습니다." 창호가 조용히 말했다.
 
1960년 도쿄
"공부만 해라." 한수가 말했다. "모든 것을 다 배워. 네 머릿속을 지식으로 채워. 그건 누구도 너한테 빼앗아 갈 수 없는 유일한 힘이야. 한수는 '공부하라'는 말 대신 '배우라'고 말했고, 노아는 둘 사 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배움은 일이 아니라 놀이였다.
 
1989 도쿄
피비가 일본인들이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할 때마다 솔로몬은 에쓰코와 가즈를 증거로 대면서 반박했다. 에쓰코는 마음씨 곱고 민족을 차별하지 않는 일본인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었지만 피비는 에쓰코를 거의 이해할 수 없었다. 에쓰코가 영어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즈는 일본인이었고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보다도 훨씬 더 솔로몬에게 친절했다.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은 솔로몬을 부잣집 아들이나 학교의 경쟁 상대로만 취급하며 때때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물론 일부 일본인은 조선인을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쓰레기 같은 조선인도 있다고 솔로몬은 피비에게 말했 다. 물론 쓰레기 같은 일본인도 있기 마련이었다. 과거를 계속 들먹일 필요는 없었다. 솔로몬은 피비가 언젠가 그런 감정을 극복하 기를 바랐다.
 
하나를 들어 올려 뉴욕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미국에서는 모든 것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일본에서는 어려운 문제를 그저 감내해야 했다.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어. 이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어쩔 수 없다'. 듣자 하니 어머니는 이 말을 싫어 했다. 갑자기 솔로몬은 어머니의 믿음과 소망을 짓밟은 그 체념의 문화에 분노했던 어머니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일본은 절대로 변하지 않아. 외국인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내 사랑, 너는 여기서 항상 외국인일 거고 결코 일본인이 될 수 없어. 알겠어? 자이니치는 어디로든 떠날 수 없지.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일본은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을 절대로 사회에 다시 받 아주지 않아. 나 같은 사람도 절대로 받아주지 않지. 우리는 일본인인데도!"
 
게다가 일본이 다 사악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였다. 물론 일본에 재수 없는 인간들이 있지만 그런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이 여기 온 후로 피비가 변했거나, 아니면 피비를 향한 솔로몬의 감정이 변했다. 피비에게 청혼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이제 시민권을 얻기 위해 결혼하면 된다는 의견을 피비가 내놓자 솔로몬은 미국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고 아버지가 행복해할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인이 되는 것보다 미국인이 되는 것이 더 나을까? 솔로몬은 일본으로 귀화한 조선인들을 알았고 그것이 타당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그럴 수도 있다. 피비의 말이 옳았다. 일본에서 태어나고도 남한 여권을 갖는 것은 이상했다. 귀화하는 것도 배제할수 없었다. 다른 조선인이 이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더 이상 상관없었다.
 
 
4. 감상평
 
 
1) '파친코'는 일본 만화에 꽤 많이 등장한다. 한국에서 파친코는 도박으로 여긴다. 만화출판사에서 근무하느라 꽤 많은 일본만화를 읽은 나는, 일본만화에 오락실처럼 등장하는 파친코 가게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파칭코, 파칭꼬, 빠찡꼬, 제대로 된 표준어까지 찾아가며 교정봤던 적이 있다. 그래서 제목 파친코가 신기했는데, 일본에서도 인정받는 직업은 아니었나 보다. 조선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파친코업에 많았을 거란 접근이 신선했다. 
 
2) 한 20년도 더 됐나. 촬영하는 교회오빠가 '이민자의 감성을 따라갈 수가 없다. 무척 갖고 싶으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서 놀랐던 적이 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나 배척받는 이민자의 두 개의 삶은 새로운 시선과 시각을 갖게 된다고 것이다. 디아스포라를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제 이런 감성이 문화의 대세가 된 것 같기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감성을 이제 접근할 수 있는 것 같다. 
 
3) 1910년부터 1989년까지 80여 년의 기록. 세대가 이어지고 내려가는 과정이 무척 방대하다. 각 세대의 사고가 묻어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2권으로는 부족했던 것 같다. 태백산맥 처럼 한 10권으로 냈어도 읽었을 텐데.
 
4) 읽다보니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이 궁금해졌다. 1902년생이었던 할머니, 세 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름을 보고 머슴인 줄 알았으나 철도청 직원이었고, 당시 유행하던 이름이라고 했다. 1942년생 엄마. 경상도 시골에서 산 엄마는 9살에 전쟁이 나서 초등학교 2학년만 다니고 졸업을 하지 못했다. 외할아버지는 둘째로 착하디 착해서, 술도 안 먹고, 노름도 안하고, 동네 일 다 도와주고, 형에게 제대로 받지도 못했다는데 40대에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이 넷을 두고. 외할머니의 삶은 어땠을까. 이 시기를 견딘 삶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데. 
 
5) 이제 애플TV 달려! 먼저 책으로 읽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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