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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여자혼자떠나기_유럽편/여행후기록

비엔나에 오길 백번 잘했다!

기루짱 2009. 1. 1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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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고 겁많고 영어 못하는 여자의 첫여행이라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자고, 다니는 것. 여기에 집중하다 보니 대신 가서 무엇을 할지는 아주 단순무식(-_-)했다.
비엔나 역시 오직 노다메처럼 음악에 빠져봐야지 하곤 갔던 게 다니까. 그러나 여행은 가면 다 된다고 했던가!
내가 가진 미술관 명단에 보면 비엔나에는 빈 미술사 박물관이 있다.(http://hyunaaa.tistory.com/4참고)
유럽의 관광지는 대개 그렇지만, 주요 거점에 내려서 근방을 쭉 돌아보면 된다. 비엔나 역시 여행책자에는 스테판 성당과 국립 오페라 극장을 축으로 고리형으로 빙 돌아가면서 보도록 권장되어 있다. 난 그 고리의 마지막에 미술사 박물관을 넣었다. 위치를 보니 그 고리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고 쉬니첼을 먹으러 가는 곳도 그곳에서 가까웠기 때문이다.


빈 미술사 박물관은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에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똑같은 건물이 있는데 빈 자연사박물관이다. 둘다 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에 돌아보려면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다. 난 자연사박물관은 가볍게 포기하고 미술사 박물관만 보기로 했다.

큰 건물에 비해 들어가는 입구 표시도 안 되어 있어 어떤 문이 열린 문인지 몰라 헤맸더니 신사분이 나와서 열어주셨다. 안에 들어가면 밖에서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화려함의 극치가 펼쳐진다. 난 이후 유럽 어느곳에서도 이곳만큼 화려한 실내를 보지 못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소장품이라는데 난 사치스럽고 화려한 왕가의 소장품이라기 보다 예술의 가치를 알고 사들인 왕가의 안목과 그로 인해 발전한 미술의 역사를 보고 예술과 사치를 구분하는 경계를 지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가에서 그림을 사들였기에 당대 화가들은 최고의 대접을 받고 예술은 그 만큼 발전했다. 예술가들이 경제적으로 살아남고 자기 작품을 이어가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 아니던가. 

많은 작품이 있었지만, 여행을 위해 미술사 책을 본 지라 거의 대부분의 작품은 일단 보고 작가를 보는 정도에서 슬쩍슬쩍 넘어갔다. 그리고 주로 여행 책자에 나온 작품을 위주로 보았다. 그래도 방대한 공간과 작품에 매우 피곤했다.^^;
루벤스, 라파엘, 렘브란트 등의 작품과 벨라스케스의 <왕녀 마르가리타>가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미술사 박물관을 나와 마리아 테리지아 동상을 뒤로 두고 중앙 광장을 쭉 가로질러 건너가면 현대미술관 건물이 나온다. 현대미술관에 대해서는 여행책자에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아 무작정 건너갔다.

널찍한 광장이 젊은이들이 제법 있었는데, 정면에 국립현대미술관, 오른쪽에는 현대미술관, 왼쪽으로 레오폴트 뮤지엄이 보였다. 이곳이 바로 뮤지엄쿼티어!

왼쪽으로는 레오폴트 뮤지엄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현대미술관이 보였다. 어디로 갈까?


이때만 해도 레오폴트 뮤지엄이 어떤 뮤지엄인지 몰랐다.
가만히 서서 왼쪽, 오른쪽 어느쪽을 갈까 하다가 외관이 특이했던 현대 미술관으로 걸어갔다. 들어갔더니 중국 현대 설치작가전을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중국작가전을 볼 이유는 없었다. 
안내원에게 다른 전시는 없냐고 했더니 조금 더 내셔널한 전시를 원하면 레오폴트 뮤지엄으로 가보라고 한다. 난 아시아에서 왔으니 다른 전시를 보러 가겠다고 인사한 후 나와서 레오폴트 뮤지엄으로 갔다.

전시는 안 봤지만 솔직히 쬐~금 부러웠다.


레오폴트 뮤지엄에 들어갈 때만 해도 너무 다리가 아파서 들어가자마자 첫 전시관의 의자에 앉아서 옆에 있던 작품 도록을 쭉 훓어봤다. 사실 이때도 잘 몰랐다. 그러나 그림을 보러다니면서 이 미술관을 나올 수가 없었다.

그림의 묘미는 직접 본다는 거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백 번 보는 것과, 직접 가서 울룩불룩한 질감을 눈앞에 두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는 여행을 오기 바로 전, 고흐전에서 경험한 터였다. 마치 고슴도치의 사진을 보는 것과 눈앞에 두고 찔린 듯한 느낌을 받는 차이라고나 할까.

레오폴트 뮤지엄에는 여러 훌륭한 작품이 있었지만 특히 쉴러의 그림은 어떤 인쇄나 사진으로도 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작가의 붓터치가 나를 꽉 잡고 놓질 않았다. 연필 스케치 같은 선, 붓이 어떻게 휘었는지에 따라 근육이 뭉클뭉클하고 질감이 울뚝불뚝 살아났다. 작가의 손길이 그림에서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한 작품 한 작품 보고 또 보고, 가까이 가서 보고 멀리서 봤다. 붓을 든 작가가 나타나 붓을 돌렸다. 인물이 살아나고, 그 인물들은 유약한 심장을 가진 인간처럼 여릿여린 하기만 했다.
이것을 스캔을 뜬들, 사진을 찍어 인화를 한들, 드러나지 않을 거라는 걸 직업상(-_-) 아는 나는 직접 죽치고 앉아 보고 또 봤다. 입을 헤 벌린 채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레오폴트 뮤지엄에는 쉴러, 오스카, 클림트 등 당대 유명 작가의 훌륭한 그림을 가장 많이 소유한 뮤지엄이다. 정말 보물 같은 비엔나였다.


그리고 비엔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전시관, 벨베데레 궁전.
다음날 시내에서 트램을 타고 갔다. 화려한 정원을 사이에 두고 하궁 벨베데레, 상궁 벨베데레 두 바로크양식의 건물이 있는데 상궁 벨베데레에 그 유명한 구스타브 클림트이 <키스>가 있다.

레오플트 뮤지엄에서 쉴러, 오스카 등의 최고작을 모아놓았다면, 이곳엔 클림트이 최고작품들이 있다. 
물론 클림트의 인기는 단연 실감할 수 있는데, 클림트의 그림을 모아놓은 방에 몰려있는 관광객의 수와 이에 비례하는 여러 명의 경비원 수나, 유리 케이스 안에 특별 보관된 작품이 그렇다.
그러나 많은 사람, 경비원, 유리막도 클림트의 <키스>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림을 딱 본 순간 소름끼치는 끌림!
일단 <키스>의 실제 사이즈는 높이가 180센티미터, 가로는 178센티미터나 된다. 내 키보다도, 여러 사람이 앞에 서 있어도 그림을 다 가리지 못했다. 그리고 번쩍번쩍하는 황금빛의 발광.
금빛 화려함에 싸여 있는 얼굴 표정과 눈길은 유혹 그 자체였다! 아, 정말 실제로 본 것과 아닌 것은 정말 천지차이였다!
난 이날 비엔나에 오길 잘했다고 백 번은 중얼거렸다.


벨베데레 궁전 가는 길.

벨베데레 궁전에서 찍은 정원. 하궁 벨베데레 궁전이 보인다.

궁전 입구에 있는 조각. 기둥을 이고 있다.


이곳에서는 클림트의 초기작을 볼 수 있어 제자인 에곤 쉴러가 스승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작가들이 직접 활동했던 공간이기에 비엔나에는 그들의 사회적 상황들도 그대로 남아 박물관이 된다. 오페라를 보기 전, 'SECESSION'(세체시온)에 클림트의 벽화가 있다는 얘길 듣고 찾아갔다. 물론 아주 단순하게 찾아갔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여태까지 본 것과 다른, 뭔가 인디문화의 분위기가 확 풍겨오면서 신문, 책자, 클림트의 활동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뭔가 느낌이 심상치 않아 전자사전을 들고 안되는 영어로 억지로 해석을 하고 보니 SECESSION은 세션, 즉 분리되었다는 의미. 즉, 보수적인 예술가 집단인 '쿤스들러 하우스'를 탈퇴하고 만들어진 '분리파'의 기록인 셈이었다.
클림트는 빈분리파 창시자로, 오스트리아 현대 화단을 대표하는 가장 탁월하고 혁신적인 화가로 기록된다. 종래의 미술 개념의 지평을 넓히는 진보적인 미술 운동을 지배한 인물로, '빈 분리파'의 초대회장이기도 했다. 그 역사적 현장이 바로 'SECESSION'이었다. 책자, 신문 등은 클림트가 살았던 시대의 배경과 그가 그 당시 선택한 행동의 기록이었다. 
작품을 보고, 그의 생각과 행동을 접하게 되면서 클림트, 쉴러는,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비엔나라는 도시는 좀더 내게 살아 다가왔다.

아, 물론 클림트가 이곳에 그려놓은 킹콩 벽화도 큰 수확이었다!
(이곳에 대한 사진을 보려면 이곳 블로그로. http://likenoone.egloos.com/2088857)

쎄체시온 입구.

클림트의 벽화를 보러 내려가는 곳.

이곳에선 실험적인 전시가 홍보,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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