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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루 여행기
이토록 평범한 미래 / 김연수 본문
1.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이후 오랜만에 만났다. 글 잘쓰는 사람.
2. 목차
이토록 평범한 미래 007
난주의 바다 앞에서 037
진주의 결말 067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099
엄마 없는 아이들 129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157
사랑의 단상 2014 183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215
맨 마지막 작품부터 읽었는데, 그게 신의 한 수 였던 것 같다.
책 소개 해주신 분이 비선형적 시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최근 <컨택트>라는 영화를 보고 비선형적 언어와 사고에 대해 잠시 봤던 터라 비선형적 문학은 이런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그점에서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가 단연 최고의 작품이었고, <사랑의 단상 2014>로 마지막에 읽으면서 울고 말았다.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인상 깊었고, 책 제목은 볼수록 나에게 건네는 위로가 느껴졌다.
3. 책 속에서
그 책에 알렉산더 대왕 이야기가 나오는 거 알아? 성리학적 이념으로 숨막히던 그 시절에 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 3세가 등장하는, 서쪽 끝에 매달린 나라 이야기를 읽으니 따분한 한양 생활에 지친 젊은이들이 얼마나 신이 났게. '여아가 항행하여 무화하면 기식우지진부재리오'라면 리마두의 그 책에 나오는 문장으로 '만약 내게 항상 행복한 있고 불행이 없다면 어찌 벗의 참되고 거짓됨을 알 수 있으리오'라는 뜻인데, 그 몇 년 뒤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이승훈이며 이벽이며 정약용 형제들은 그 문장이 가리키는 바를 온몸으로 절감하게 되지.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객차와 객차 사이의 통로로 나아갔다. 할아버지는 바르바라와 바르바라와...... 그리고 또다른 바르바라를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다가 다시 객차 안으로 들어온 할아버지는 선반 위에 올려놓은 가방에서 책을 꺼내 자리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할아버지의 온 신경은 그 남자에게 가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그 남자가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는 미래의 우리를 생각했던 것이리라. 아마도 그랬으리라. 그렇게 기차는 세 시간을 달렸고, 할아버지는 대구에서 내렸다.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중에서
그중에서도 가장 쓸모없는 말은, 그때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던, 하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게 된 그 말, 한때 나를 사랑했던 너에게는 말할 수 있었으나 이제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에게는 말할 수 없는 그 말,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사랑의 단상 2014> 중에서
지구의 나이 사십육억 년을 일 년으로 치면 한 달은 약 사억 년, 하루는 천삼백만 년, 한 시간은 오십오만 년이 된다. 그런 식으로 따져보면 공룡은 12월 11일에 나타나 16일에 사라졌고, 인류는, 12월 31일 저녁 여덟시에 처음 등장해 열한시 삼십분이 되어서야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그리고 현대문명은 자정 이 초 전에 시작됐다.
"(전략)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 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아무리 세찬 모래 폭풍이라고 할지라도 지나간다는 것을 믿는, 버스 안의 고개 숙인 인도 사람들처럼. 그건 그 책을 읽기 전부터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였어.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금도 책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 그분들은 왜 그렇게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할까? 나는 왜 같은 이야기를 읽고 또 읽을까? 그러다가 문득 알게 된 거야, 그 이유를."
"이유가 뭔데?"
"언젠가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되기 때문이지."
-<바안자그에서 그가 본 것> 중에서
4. 감상평
과학에서 비선형적 사고는 시간의 흐름이겠지만, 인문학의 비선형적 사고는 과거와 미래와의 대화다. 타임슬립물이 아니라 현재를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전후 200년을 살 수 있다"고 한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처럼 어렵고 힘든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책.
마무리에서 할아버지의 행동을 의아해 하다가, 마침 또 읽던 '실존주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죽음은 도피일뿐, 나의 실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몸부림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바로 현재, 오늘인 것 같아요. 모두 미래를 맞이하시길 바래요."
책모임에 남긴 글.
그의 장편소설을 읽어봐야겠다.